인물탐구

조니뎁에 관하여. part-1 인생 초년

gunwulab 2022. 6. 21. 12:59

본명 존 크리스토퍼 뎁 2(일명 조니뎁)196349일 켄터키 오웬스보로에서 태어 났다.

그의 아버지 존 크리스토퍼 뎁은 토목 기사였고, 그의 어머니 베티 수 팔머는 웨이트리스였다.

조니는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조니의 어린 시절 가족은 이사를 자주 했고,

최종적으로 플로리다 미라마에 정착하게 됐다. 그의 부모님은 뎁의 나이 15살 때 이혼했다.

그리고 얼마 후 뎁의 어머니는 로버트 팔머라는 사람과 재혼했다.

조니는 종종 그를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고 불렀다.

 

뎁의 어머니는 조니가 12살이 될 무렵 기타를 선물했고, 그는 다양한 밴드에서 연주를 했다.

그러다 그는 락 뮤지션이 되겠다는 결심을 한 후 미라마 고등학교를 중퇴하게 됐다.

생각이 바뀐 조니는 2주 후 학교에 돌아가려고 교장 선생님에게 상담 했지만, 교장 선생님은

조니가 꿈을 향해 나아가라고 권유해 주었다.

 

1980년대 조니는 키즈kids'라는 불리는 밴드에서 활동하게 됐다. 플로리다 지방에서 작은 지역적 성공을 거두게 됐고,

그 기세를 몰아 음반 계약을 위해 엘에이로 이주 했다. 그리고 밴드 이름을 식스 건 메쏘드로 변경 했다. 밴드 생활을 영위하는 한편 생계를 위해 조니는 텔레마케터 같은 다양한 일들을 했다.

 

1983년 조니뎁은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로리 앨리슨과 결혼 했다. 그녀는 그가 활동하고 있는

밴드의 베이시스트이자 보컬의 여동생이었다. 조니는 밴드 키즈의 음반 계약일 체결되기 전에 팀에서 탈퇴 했고,

다른 락 밴드인 시티 엔젤스에서 공동작업을 하기도 했다.

공동작업 곡인 메리라는 곡은 엔젤스의 데뷔 앨범에 수록되기도 했다.

뎁과 앨리슨은 1985년 이혼했다.

 

뎁의 혈통은 거의 대부분이 영국이고, 프랑스, 독일, 아일랜드 피도 약간 섞여 있다.

그의 특이한 성인 depp1700년대 버지니아에 정착한 프랑스 위그노 이민자 피에르 디에프에서 유래 했다.

 

조니뎁은 한 인터뷰에서 자신에게는 인디언의 피가 흐르는 거 같다고 얘기하며,

자신의 증조모가 체로키 혹은 크리크 인디언의 손에서 자랐다고 얘기했다.

 

켄터키 지방에 체로키 그리고 크리크 인디언에 정착해서 많이 살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타당한 추측이다.

하지만 뎁은 자신이 인디언 부족의 후예이며 일원으로 인정받은 적이 없다고 발언하자 인디언 컨트리 투데이는

이 부분에 대해서 조사를 착수하게 된다.

 

인디언 공동체 커뮤니티는 조니가 인디언의 후예라는 어떤 기록도 발견된 게 없다며,

그는 인디언의 후예가 아니라고 비난했다.

 

조니는 토론토 지방의 론 레인저에서 하기로 했던 토론회를 연기 했고, 그가 활동하고

있는 록 밴드의 이름을 ‘Tonto's Giant Nuts’이라고 작명한 것에 대해서도 비판 받았다.

토론회 프로모션 기간 중 코만치 네이션(인디언)의 라돈나 헤리스의 양자로 입양 되었고,

그녀의 가족 구성원으로 됐지만, 다른 부족들에게는 부족의 일원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뎁은 코만치식 인디언 마 우 메이라는 이름을 받게 됐는데 그 이름의 뜻은 변신술사

뜻이다. (조니의 직업을 보면 이 작명은 정말 센스 있고 잘 맞아 떨어진다.)

이후에도 뎁에 대한 원주민 커뮤니티의 비판은 계속적으로 이어졌다.

(2019년 인디언 원주민의 이미지를 차용해 만든 디오르의 ‘Sauvage’는 문화적 착취와

인종차별적이라는 비난을 당하기도 했다.)